1882년 여름, 한양 도성은 13개월 동안 월급(군료)을 받지 못해 굶주림에 허덕이던 군인들의 분노로 불타올랐습니다. 간신히 손에 쥔 쌀자루를 열었을 때 그들을 맞이한 것은 썩은 쌀알과 뒤섞인 모래와 겨뿐이었습니다. 개항 이후 추진된 급격한 개화 정책의 그늘 속에서 터져 나온 임오군란(壬午軍亂), 구식 군인의 단순한 폭동을 넘어 청나라와 일본의 본격적인 내정간섭을 불러오며 한반도를 열강의 격전지로 몰아넣은 1882년의 비극을 3가지 핵심 주제로 짚어봅니다. 1. 차별 대우의 뇌란 : 신식 군대 별기군과 굶주린 구식 군인강화도 조약 이후 고종 정권은 근대적 개혁을 추진하며 1881년 최초의 신식 군대인 별기군(別技軍)을 창설했습니다. 양반 자제들로 구성된 별기군은 일본의 교관(호리모토 소위)에게 신식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