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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피로 물든 경복궁, 을미사변(1895)과 단발령 : 국모의 시해와 을미의병의 분노

뚜벅이 역사 2026. 10. 31. 13:30

1895년 10월 8일 새벽, 조선의 심장부인 경복궁에 칼을 든 자객 무리가 난입했습니다. 총성과 비명이 고요한 대궐을 뒤흔들었고, 한 나라의 왕비가 궁궐 깊숙한 처소에서 무참히 살해당한 뒤 불태워지는 전대미문의 만행이 벌어졌습니다.

외세의 침략이 한 나라의 주권과 왕실의 존엄을 어디까지 짓밟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참극인 을미사변(乙未事變), 그리고 이에 뒤이어 강행된 단발령(斷髮嶺)과 전국을 뒤흔든 을미의병(乙未義兵)의 항쟁을 3가지 핵심 주제로 짚어봅니다.

 

 

 

1. 여우사냥의 음모와 경복궁의 새벽 비극 : 을미사변

청일전쟁 승리 후 일본은 요동반도를 차지하며 기세를 올렸으나, 러시아·독일·프랑스의 삼국간섭(1895)에 굴복해 요동반도를 청에 반환해야 했습니다.

  • 인아거일(引俄拒日) 정책 : 조선 왕실, 특히 명성황후는 이를 계기로 러시아의 힘을 끌어들여 일본의 간섭을 견제하고자 정동구락부 세력과 연대했습니다. 이에 따라 친일 내각이 무너지고 친러·친미 성향의 관료들이 대거 등용되었습니다.
  • 미우라의 '여우사냥' 작전 :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새로 부임한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일본 낭인, 외교관, 수비대를 동원해 명성황후를 직접 제거하는 암살 작전을 감행한 것입니다.
  • 건청궁 옥호루의 참극 :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 낭인들은 훈련대 군인들을 앞세워 경복궁 광화문을 뚫고 침입했습니다. 이들은 건천궁 옥호루에서 명성황후를 찾아내 무참히 시해한 뒤, 녹원 숲으로 시신을 옮겨 장작을 쌓고 불태워 흔적을 없애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2. 유교 질서의 뿌리를 자르다 : 을미개혁과 단발령의 강행

 명성황후를 시해한 직후 일본은 고종을 연금하고 김홍집을 앞세워 제3차 개혁인 을미개혁(乙未改革)을 밀어붙였습니다.

  • 태양력 채택과 근대적 제도 도입 : 전통 음력 대신 양력(태양력)을 공식 채택하여 1896년 1월 1일 '건양(建陽)'원년으로 삼았습니다. 소학교 설치와 종두법(천연두 예방 접종)시행, 근대적 우편망 재가동 등 실용적인 조치도 포함되었습니다.
  • 단발령의 선포와 민중의 충격 : 가장 큰 반발을 부른 것은 전격적인 단발령이었습니다. "위생에 이롭고 일하기 편하다:는 명분으로 상투를 자르도록 강제했습니다.
  •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 성리학적 유교 사회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몸을 훼손하는 패륜이자 오랑캐가 되는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면암 최익현은 "내 목은 자를지언정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吾頭可斷 吾髮不可斷)"며 강력히 항거했습니다.

3. 선비와 백성의 의로운 분노 : 을미의병의 봉기

왕비가 외세의 칼에 살해당한 '국모의 원수'와 부모에 대한 효를 강제로 짓밟은 '상투의 절단'은 온 나라 백성의 분노를 임계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 을미의병의 결속 : 유인석, 이소응 등 위정척사파 유생들이 앞장서서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양반 유생뿐만 아니라 농민, 포수, 동학농민군의 잔여 세력까지 대거 합류하여 전국 각지의 일본군과 단발을 강행하던 친일 관리를 처단했습니다.
  • 국권 수호의 도화선 : 비록 신식 무기를 갖춘 일본군과 관군의 진압으로 해산되었지만, 을미의병은 이후 을사의병(1905)과 정미의병(1907)으로 계승되는 한말 항일 무장 투쟁의 굳건한 첫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 고종의 결단 : 경복궁에서 감금 상태나 다름없는 나날을 보내며 독살의 공포에 떨던 고종은, 마침내 1896년 2월 러시아 공사관으로 처소를 옮기는 아관파천(俄館播遷)을 단행하게 됩니다.

마무리 : 짓밟힌 존엄과 다시 일어선 민족혼

을미사변은 제국주의 침략 세력이 이웃 주권 국가의 왕실에 가한 가장 야만적인 국가 범죄였습니다. 이어진 단발령 또한 문화적 설득 없는 일방적인 강요였기에 백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참혹한 비극 앞에서 조선의 백성들은 결코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벼슬을 버린 선비부터 이름 없는 포수와 농민에 이르기까지, 불의에 맞서 칼과 화승총을 쥐었던 을미의병의 피 끓는 저항은 꺼져가던 민족의 자주독립 의지를 다시금 활활 타오르게 한 뜨거운 불씨였습니다.